"한국은 부유한 국가가 됐지만 많은 돈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은 자신의 목적과 의미를 찾길 원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도전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한국교회의 폭발적 성장을 이끈 인물이다. 집회 이듬해인 1974년 서울 시내에 자리한 1400여개 교회는 2000여개로 늘었고, 1970년 219만여명이었던 신도수는 1978년 375만여명으로 급증했다.
빌리 그래함 목사의 한국 사랑은 남달랐다. 수십 년간 12명의 미국 의 멘토를 맡았던 그는 6·25전쟁 당시 미국 트루먼 에게 눈물로 호소해 한국 지원을 끌어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한국 성도가 나라를 구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포기하시렵니까?"라는 호소로 UN 16개국의 참전을 끌어내는 데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다.
50년 전 아버지가 부흥의 씨앗을 뿌린 한국 땅을 밟은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세속주의나 물질주의는 사람의 영혼을 채울 수 없다. 하나님만이 그 공간을 채울 수 있다"며 "하나님께서 한국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러 왔다.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을 초청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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